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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향교】묻혀가던 역사, 아이들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 김은실
  • 등록 2026-09-07 20:54:39
  • 수정 2026-09-07 21: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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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기향교, ‘살아 숨 쉬는 역사’ 체험공간으로 탈바꿈 장기발전연구회,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 첫 테마 「유생, 의병이 되다」 운영

 

 포항시 남구 장기면의 조용한 농촌 마을이 지난 6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으로 활기를 띠었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장기향교와 장기읍성, 그리고 선비와 의병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장기면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유생복을 입고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과거를 체험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장기발전연구회(회장 이종길)는 지난 6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장기향교 일원에서 ‘장기향교, 태극마크 달다’(부제: 코드명 학 세마리)의 첫 번째 테마인 「유생, 의병이 되다」를 운영했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회차별 정원 20명을 크게 웃도는 50여 명의 어린이와 가족이 참여했다. 신청 접수가 시작된 지 며칠 만에 조기 마감된 데 이어 현장에서도 추가 문의가 이어져 장기향교를 활용한 역사문화 체험 콘텐츠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역사를 듣고 배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이 직접 ‘유생’과 ‘의병’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도록 구성됐다. 아이들은 장기의 역사와 선비정신을 몸으로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접했다.


“나라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유생에서 의병으로

 장기향교에 도착한 어린이들은 하늘색 유생복과 유건을 갖춰 입고 ‘일일 유생’으로 변신했다.

명륜당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조선시대 향교의 역할과 장기 지역 선비들이 지켜온 충의(忠義)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긴급 상황이 선포됐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유생에서 의병으로 역할을 바꾸고 워크북과 단서 카드를 받아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한글 암호를 해독하고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장기향교와 성현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암호를 풀어낸 참가자들은 장기향교에 모셔진 성현들의 위패 내용을 직접 옮겨 적은 뒤, 이를 장기읍성 북문의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미션까지 수행했다.


 역사책 속에서나 접하던 ‘유생’과 ‘의병’이라는 단어가 이날만큼은 아이들이 직접 맡은 역할이 됐다.


비격진천뢰가 ‘생명의 씨앗’으로… 역사와 환경을 잇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체험은 ‘비격진천뢰 씨앗 폭탄’ 만들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무기였던 비격진천뢰에서 착안해 점토와 배양토에 야생화 씨앗을 섞어 둥글게 빚은 ‘씨앗 폭탄(seed bomb)’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씨앗 폭탄을 들고 향교 누마루에 올라 힘껏 던졌다.

“하나, 둘, 셋!”


 구령과 함께 씨앗 폭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비가 내리면 점토가 녹으면서 안에 들어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는 원리다. 전쟁의 무기를 생명을 피우는 씨앗으로 재해석해 역사와 환경교육을 하나의 체험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어진 ‘태극기 샌드위치 만들기’에서는 식빵 위에 딸기잼과 블루베리로 태극 문양을 표현하고 초콜릿으로 사괘를 그려 넣었다. 어린이들은 물론 함께 온 부모들도 직접 음식을 만들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풍물 장단에 맞춰 마을길 누빈 ‘일일 유생들’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장기풍물단과 함께한 신명 나는 행진이었다. 유생복을 입은 아이들과 부모들은 태극 문양이 그려진 소고를 손에 들고 꽹과리와 장구, 북소리에 맞춰 향교 앞마당과 마을길을 걸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펄럭이는 깃발과 신명 나는 풍물 장단 속에서 어린이와 어르신 풍물단원이 한데 어우러졌다. 처음 소고를 잡아본 아이들도 어느새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마을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묻혀가던 역사, 아이들의 체험으로 다시 살아나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어린이 체험행사를 넘어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기면에는 장기향교와 장기읍성을 비롯해 선비와 유배, 의병 등 오랜 역사문화 자원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그동안 이러한 역사적 가치가 어린이와 젊은 세대에게 쉽고 친근하게 전달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기발전연구회는 이러한 ‘묻혀가고 잊혀가는 역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체험 콘텐츠로 재구성했다. 역사를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입고, 걷고, 찾고, 만들고, 뛰면서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조용한 농촌 마을의 오래된 공간이 어린이들의 체험 무대로 변하면서 장기향교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적을 넘어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살아 있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잘 만든 역사 콘텐츠 하나가 사람을 장기로 불러온다”

 인구감소지역인 장기면에 젊은 가족들이 찾아왔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포항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이상 이동해야 하는 장기면이지만, 잘 만들어진 역사·문화 콘텐츠 하나가 아이와 부모를 자발적으로 장기로 이끌어낸 것이다.


 한 참가 학부모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왔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며 “아이가 교과서에서 보던 비격진천뢰를 직접 만들어 던져 보니 역사에 대한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종길 장기발전연구회 회장은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일수록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직접 찾아오게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절실하다”며 “장기라는 작은 고을이 품고 있는 충효와 선비, 의병의 역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것이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역사가 책 속에만 머물러 있다면 언젠가는 잊혀질 수밖에 없다”며 “아이들이 이곳에서 직접 역사를 경험하고 장기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돌아가는 것 자체가 지역의 가장 큰 자산이자 이번 사업의 진짜 성과”라고 강조했다.


 장기발전연구회는 앞으로도 장기향교와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해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체험으로 되살리고,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이어주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사업은 국가유산청의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국가유산 활용사업’ 공모에 선정돼 국가 지원을 받아 추진되고 있으며,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주최하고 장기발전연구회가 주관한다. 올해 총 11회의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오래된 향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묻혀가던 역사는 다시 현재가 되고 있었다.

장기향교는 이제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역사를 만나고 미래를 꿈꾸는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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